2012년 7월 31일 화요일

“도넛 500개 강제 할당, 못 팔면 먹든 버리든 알아서 하라더라”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피자헛 매장 앞에 30일 배달용 스쿠터들이 세워져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ㆍ(5) 프랜차이즈의 비밀… 4년간 도넛 프랜차이즈 운영한 가족

프랜차이즈. 퇴직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제2의 인생’이다.

취업에 지친 젊은이,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도 프랜차이즈는 꽤나 매력적이다. 강력한 브랜드파워, 본사의 각종 지원, 게다가 완벽하다는 상권분석 등 3박자가 고루 갖춰져 있다는 점 때문에 ‘자영업의 종결자’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상당수는 희망이 낙담으로 바뀌는 상황에 놓인다.

한성희씨(55·가명)는 대기업 계열 도넛 프랜차이즈를 4년간 운영했다. 하지만 그에게 4년은 악몽이었다. 프랜차이즈를 시작하기 전에는 11년간 개인 분식점을 운영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뒤였다. 겉보기에는 초라했지만 열심히 일한 덕에 수입도 괜찮았다. 3남매를 대학에 보냈고, 집도 마련했다.

▲ 본사 제시 수익은 반토막

사업 안되자 가족 간 불화

1억 넘게 손해 보고 분식집


생활이 안정되자 10년 이상 허드렛일을 해온 남편에게 명함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프랜차이즈 사장’이라는 직함은 ‘구멍가게 주인’을 압도했다. 저질렀다. 초기 자금은 예상보다 훨씬 많이 소요됐다.

한씨는 “해당 프랜차이즈 본사는 목이 좋지 않으면 점포를 안 내준다”며 “점주들이 4차선 이상 도로변, 특히 코너 자리를 확보해야 가맹 협의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목이 좋은 곳은 통상 보증금과 권리금이 각각 1억원 이상이다. 본사가 요구해 설치하는 기계값 등에도 1억5000만원이 들어갔다. 시작할 때 한번 내는 가맹비(브랜드 비용)도 1000만원이었다. 여기에 새 매장을 내려면 본사에서 인테리어 등을 요구한다. 그동안 모은 돈과 은행 대출 등을 합쳐 4억3000만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본사는 약탈적이었다.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 때 등 여러 가지 판매 행사를 해요. 그런데 본사 마음대로 일괄 출고를 해버려요. 우리 가게에서 팔 수 있는 양은 200개밖에 안되는데, 500개의 도넛이 내려옵니다. 300개는 버려야 하죠.”

‘500개’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한씨는 “계약서상으로도 거부할 수 없을뿐더러 본사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 ‘남으면 당신이 먹든 버리든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고 밝혔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본사 직원도 회사로부터 압박을 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본사 측 수익률 제안도 사실과 달랐다. 한씨는 “도넛점 본사는 창업 전엔 ‘매출의 40% 이상을 수익으로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며 “그런데 직접 운영해보니 19%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온 가족이 매달리고도 월 200만원 벌면 다행이었다”며 “10곳 중 7~8곳은 이 정도 수준의 벌이밖에 못한다”고 밝혔다.

약탈은 또 있다. 그는 본사와 계약할 때 2년간 점포 인근에 같은 프랜차이즈점을 신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2년이 못돼 같은 건물 지하에 똑같은 도넛점이 들어섰다. 한씨는 “계약서를 교묘하게 해석해 ‘문제없다’고 우기는데, 불이익 걱정에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알고 있는 다른 점주는 본사에 계약대로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2년1일째 되는 날 도로 맞은편에 같은 브랜드의 도넛점이 생겼다고 한다. 한씨는 “개별 점주가 본사의 횡포를 당해낼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한씨 부부와 대학생 자녀들까지 매달렸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한씨는 “사업이 안되니 불화가 생겨났다”며 “가족끼리 거의 매일 싸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씨는 도넛점을 2억8000만원에 넘기고 과거 경험을 살려 분식점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요즘 젊은 소비자들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다”며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열에 아홉은 망하고, 본사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을 생각해주지 않으니, 참 어렵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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