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경남도 대표 소주 제조기업 무학과 대선주조가 부산, 울산, 경남 지역 소주 시장 판세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가 대선주조의 무학에 대한 불법 판촉 신고를 받고도 조사조차 착수하지 않고 심사불개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사안이 조사를 통해 확인된다면 공정거래법 23조 부당고객유인 행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지만 혐의사실 입증이 어려워 조사를 착수하지 못했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다.
◆경쟁사 제품 빼면 30만원 줄게
28일 공정위와 두 소주업체에 따르면 대선(시원, 즐거워 예)은 4월 공정위 부산사무소에 무학(좋은데이)의 불법 판촉을 신고했다. 신고 주요 내용은 무학이 저알콜 소주인 ‘좋은데이’를 해당 식당 내에서 대선의 ‘즐거워예’를 판매하지 않을 경우 현금 3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 또한 1000원 짜리 지폐를 좋은데이 병에 감아(사진)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금 30만원 지급과 관련해 대선은 “무학 직원들이 올 2월말부터 소주 판매량이 많은 부산지역 업소를 돌며 대선주조의 즐거워예를 판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현금 30만원을 주겠다고 제의했다”고 신고했다.
대선의 현금제의를 받은 업소는 37곳. 실제로 돈을 받고 즐거워예를 뺀 업소는 6곳으로 업소 명단까지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신고 이후에도 이런 업소들이 계속 늘고 있다는 게 대선 측 입장이다. 또한 대선은 해당 4개 업소 업주가 “무학 직원으로부터 현금 30만원을 줄테니 즐거워예를 빼달라는 요청 받았다”고 증언했고 녹취록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대선은 지난 3월7일 현금 제의받은 업소 명단과 관련 녹취록을 첨부해 공정위 부산사무소에 고발했다.
또 대선 관계자는 “무학이 부산 자갈치 시장을 대상으로 4월 초부터 자갈치시장 경비원이 대선주조 판촉사원들이 건물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건물 입구에서 저지한 사실도 있었다”고 밝혔다. 대선은 무학 직원이 자갈치시장 건물 2층의 총 28개 회 판매 업소를 상대로 15만원씩 줄테니 즐거워예 빼라 제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상인들이 거절하니 무학은 “조건 없이 15만원 을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상인들이 또 거절했다고 밝혔다.
부산어패류처리조합장도 대선주조에 “대선주조 직원들 건물 출입 못하게 지시했다”고 시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자갈치시장이 부산시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부산시 소유의 공공건물이라는 점. 이러한 장소를 어패류조합장 개인의 판단으로 특정 회사 직원의 출입을 막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함께 부산 경성대 앞 마포갈매기와 부산대 앞 달빛주막에서도 소주병 목에 1000원 짜리 지폐를 말아 붙여놓은 ‘좋은데이’를 판매한 사실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식당은 술을 진열장 안에 전시해 놓고, 주문하는 손님들에게 지폐가 붙은 상태로 제공했다. 업소 입구에 노골적으로 ‘소주 병당 현금 1000원을 드립니다’라는 대형 현수막까지 내건 것으로 확인됐다.
대선은 명백한 불법 행위로 좋은데이 생산업체인 무학의 제안에 의한 것으로 판단돼 다수의 관계기관에 고발 조치와 함께 경위를 파악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이에 대해 무학 관계자는 “업소에 30만원 지급하고 대선 제품을 빼라는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 현금 1000원을 병에 말아 판매한 것은 해당 가게가 개업 1주년을 기념으로 좋은데이 판매가 많아 자체적으로 이벤트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혐의사실 입증 한계?
공정위는 대선 측의 신고를 받고도 혐의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심사를 착수하지 않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무학 측이 업소에 현금으로 30만원을 주고 대선 제품을 빼라고 한 것은 사실이 입증되면 부당고객유인행위에 해당한다”며 “그러나 현금 특성상 업소 주인들이 부인하면 혐의사실 입증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 심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역 소주 시장에서 두 회사가 선의의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감시를 강화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공정위는 대선이 신고를 취하한 사실도 심사 불개시 요인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역 주류업계에 따르면 공정위 부산사무소는 해당 직원이 부족, 조사를 착수하지 못한다고 답변했다는 지적이다. 부산사무소 20명 정도의 직원이 연간 600건을 처리하는 등 업무 포화 상태에 있는 건 사실. 실제로 대선 측은 문서상으로 신고를 취하한 적은 없고 별도로 양사의 허위 과장광고와 관련해 지난 24일 열린 소회의에서 구두로 취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 취하를 이유로 공정위가 조사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공정위는 사건의 경중을 따져 신고 취하 건도 조사를 진행하는 사건이 부지기수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조사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공정위가 무학에 부당고객유인을 하지 말라는 정식 공문을 보내거나 무학으로부터 소명서를 받으면 될 일이다. 거기까지 공정위 손이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안다. 업무 포화 상태라면 경찰로 인계해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한편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소주 시장은 무학과 대선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1930년 부산을 연고지로 창립한 대선은 1974년 1도 1사 체제가 정해지면서 지역 소주 시장의 90% 후반대를 점유하는 아성을 쌓았다. 무학도 마산을 연고지로 경남지역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해 왔다.
하지만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600억 원을 투자해 인수한 대선을 3600억 원에 사모펀드로 매각하는 먹튀 논란이 벌어져 지금까지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부산지역에선 대선 불매운동이 벌어지며 상대적으로 무학의 점유율이 껑충 뛰게 됐다. 지난해 BN그룹 조성제(부산상의 회장)은 대선을 1600억 원에 인수, 신세대 스타인 ‘신세경’을 모델로 내세우며 시장 탈환에 나서고 있다.
장익창 기자 sanbada@e-segye.com
[ⓒ 이코노미세계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