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7일 일요일

집 잡혀 사는 중산층 크게 늘어났다




ㆍ빚내서 빚 갚는 ‘돌려막기’용 대출도 증가 추세

회사원 ㄱ씨(47)는 최근 사는 집을 담보로 모 시중은행으로부터 3000만원을 빌렸다.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지난해 큰딸이 대학에,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에 각각 입학하면서 교육비가 크게 늘어났다. 큰딸의 대학 등록금만 연간 1000만원이나 됐고, 둘째 아들의 과외비는 이보다 더 많았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씀씀이도 커졌다. 용돈도 ‘0’ 하나가 더 붙었고, 의류비도 만만찮게 들어갔다. 한 해가 지나면서 ㄱ씨의 마이너스 대출 통장은 바닥을 드러냈고, 하는 수 없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이다.

경기 분당에 사는 ㄴ씨(43)는 최근 은행에서 사는 집을 담보로 5000만원을 빌렸다. 친척에게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였다. 경기 광명시에 집이 있지만 직장 때문에 성남시 분당구 전셋집에서 사는 그는 지난해 전세 재계약을 하면서 보증금을 1억3000만원 올려줬다. 너무 많이 오른 전셋값 때문에 은행대출과 함께 친척에게까지 손을 벌렸던 것이다. 박씨는 “2년 뒤면 은행 거치기간이 끝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생활비는 늘고 소득은 제자리여서 제때 대출금을 갚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생계를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소득정체와 고물가로 생계형 대출이 증가하는 상황인 데다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7일 민주통합당 강기정 의원(정무위)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7∼8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내역을 분석한 결과 신규 대출은 32조3961억원이었고 이 중 주택담보대출이 20조8634억원으로 전체의 64.4%를 차지했다. 가계가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여전히 주택을 담보로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주택담보대출의 세부 용도를 살펴보면, 주택구입비용으로 사용한 경우는 8조6908억원(41.6%)으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 12조1726억원은 집을 사는 목적이 아닌 다른 용도로 쓰였다는 의미다. 대부분이 기존 차입금 상환과 생계자금, 주택 임차비 등 가계운영자금이었다.

우선 기존 차입금 상환에 5조4389억원(26.1%)이 쓰였다.

7~8월 중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기존 차입금 상환 자금도 7월 3조5001억원(23.1%)에 이어 8월에는 4조6215억원(26.8%)에 달했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고 있는 것이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가계생활이 어렵다 보니 집을 담보로 생활하거나 사업 등에 돈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일단 만기가 돌아오다 보니까 다시 주택을 담보로 빚을 갚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생계자금으로 돈을 빌린 경우는 2조3009억원(11.0%)이었다. 창업 및 자영업 운영비 4608억원, 내구 소비재 구입 1390억원, 학자금 171억원, 공과금 및 세금납부 81억원 등까지 포함하면 생계자금은 3조원에 이른다. 주택임차(전·월세) 대출도 7월 3842억원에서 8월 3962억원으로 120억원 증가했다. 기타로 분류된 2조7255억원(13.1%) 중 상당액도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경비로 분석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이라도 소액으로 빌릴 경우 사용목적을 밝히기를 꺼려 기타로 분류하고 있다”면서 “소액대출의 대부분은 생활자금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주택을 소유하고 재무구조가 비교적 건전한 중상위 계층도 생계비가 부족해 남아 있는 주택담보대출을 꺼내 쓰고 있다는 건 그만큼 가계 사정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최근 비은행권 가계대출 비중이 늘고 있는 추세다. 민주통합당 백재현 의원(행안위)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새마을금고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2008~2011년 평균 2%대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3.27%로 치솟았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평균 연체율 0.85%의 4배가 넘는 수준이다. 대출금 연체가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에서 우선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계부채의 질이 악화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주택담보대출은 우리 경제의 큰 뇌관”이라며 “대졸자들이 취업할 곳도 없고 55세 이상 은퇴자들이 할 일이 없어 자영업을 하다 보니 이런 심각한 문제에 빠졌다”고 말했다.

<박재현·김경학 기자 park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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