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7일 목요일

실패 모르고 30년 달려온 男, 하루 아침에 최대 위기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써온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웅진그룹은 주요 계열사를 매각하고 교육·섬유 분야를 중심으로 축소·재편되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경열 기자


[웅진그룹 지주사·계열사 극동건설 법정관리 신청]

브리태니커 외판원으로 출발, 1년만에 54국 영업사원중 1등

위기 심각해지면 결단 내려… 새로운 돌파구 찾는 통큰 전략

무리하게 극동건설 인수, 계속된 건설경기 침체도 불운


웅진그룹 윤석금(65) 회장의 '세일즈맨 성공신화'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는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시작해 연 매출 6조원, 재계 31위 대기업군을 일궈냈다. 요즘 재계에서 보기 드문 자수성가(自手成家)형 기업인이다. 윤 회장은 26일 밀려드는 어음을 막지 못해 그룹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주력 계열사 극동건설까지 함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성공 가도를 달려온 30여년 경영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이다.

윤석금 회장은 '뚝심의 경영인'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 입사 첫달 그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6질을 팔았다. 한국지사가 설립된 이래 최고기록을 신입사원이 세운 것이었다. 입사 1년 만에는 54개국 세일즈맨 중 전체 1등을 차지했다.

그는 판매할 물건을 불쑥 내놓기보다는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루는 작고 허름한 연탄가게에 들렀다. 말없이 연탄 몇 장을 날라주던 그가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집에 백과사전 필요하지 않으세요?" 가격을 들은 주인은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설득이 이어졌다. "선생님이 지금 이렇게 고생하시는 것도 전부 자식을 위해서 아닙니까? 자녀분들이 평생 연탄을 나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안 되려면 아이들이 많이 배워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게 해야죠." 결국 계약서 위로 연탄재 묻은 주인의 손이 올라갔다. 이게 바로 윤석금식 영업 스타일이었다.




윤 회장은 1980년 회사를 나와 자본금 7000만원에 직원 7명으로 출판 사업과 학습교재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 말까지 건강식품·화장품·정수기 사업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승승장구했다.

그의 가장 큰 힘은 '긍정'이다. 윤 회장은 자기 자신을 "긍정을 파는 세일즈맨"이라고 표현하길 즐긴다. 타고난 친화력으로 누구나 5분만 얘기하면 그의 팬으로 사로잡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판매사원들 앞에서 연설하면 마치 가수 조용필이 나온 것처럼 열광한다"며 "나와 임직원들의 이런 긍정과 열정이 오늘날 웅진을 만든 힘"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지금껏 위기가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 중대 결단을 내려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통 큰 전략을 구사해왔다. 1999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회사 자금 사정이 극도로 악화됐을 때다. 윤 회장은 결단을 내렸다. "코리아나화장품을 팝시다." 그룹 내 매출 2위(2500억원)였던 알짜 계열사였다. 내부 반대가 심했지만 윤 회장은 회사 매각을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그 돈은 정수기와 식품 사업에 투입했다. 비싼 정수기를 저렴하게 빌려주는 렌털 사업, 아침햇살·초록매실 같은 음료 신제품을 연속 히트시키면서 그는 탁월한 경영자로 이름을 날렸다.

극동건설이 자금난에 빠지자 이번에도 역시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웅진코웨이 매각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내가 어렵다고 품에 안긴 자식(극동건설)을 내칠 수 없는 거 아닌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엔 좀 망설이는 모양새였다. GS리테일, 중국 콩카그룹, KTB 사모펀드 등과 매각 협상이 결렬됐다. 결국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로 인수 후보자가 바뀌었지만 MBK 측이 이달 말까지 1조2000억원을 납입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통보해 오면서 웅진에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윤 회장은 26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웅진홀딩스의 공동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웅진 측은 "책임을 지고 경영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이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27일 발표할 사과문과 직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밤늦게까지 손질했다.



[김덕한 기자 ducky@chosun.com]

조선닷컴 핫 뉴스 Best
  • "안철수 부인 김미경 교수, '다운계약서' 작성"
  • 서울의 한 병원장, 수백억 현금결제 유도하고 탈세했다가
  • 美에 퓨전한식 알려 성공한 사업가, 알고 보니 '사기꾼'
  • 中대륙 향할 줄 알았던 태풍 '즐라왓', 한반도쪽으로 북상
  • 센카쿠·이어도 갈등… 中, 서둘러 첫 항모 배치


[조선일보 앱 바로가기] [조선일보 구독] [인포그래픽스 바로가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