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반대표 17.8%…적극적 의결권 행사 ‘거수기’ 오명 벗어
‘주주권익 침해’ 이유 정몽구 회장 이사선임안 반대도
상장회사 주주총회에서 ‘거수기’ 노릇만 한다고 비판받아온 국민연금이 올해 들어 확 바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연금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반대한 안건이 지난해에 견줘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어 국민연금의 경영 감시 기능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27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보면, 연금은 올해 들어 이달 13일까지 국내 상장사 449곳의 주총에 참여해 전체 안건 2281건 가운데 407건(17.8%)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는 예년에 견줘 두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에는 연금이 참여한 주총의 안건 2022건 가운데 153건(7.03%)에만 반대했다. 2009년과 2010년에도 반대표를 행사한 비율이 각각 6.59%, 8.08%에 그쳤다.
국민연금의 주총 반대의사 개진이 늘어난 것은 지난 4월 상법 개정 전후로, 상장사의 정관 변경이 대거 주총 안건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기업들이 정관 변경을 시도할 때 경영진을 견제할 장치가 마련된 경우에만 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관이 변경될 경우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들에게 배당 감소 등의 불이익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올해 반대표를 던진 안건 407건 가운데 67.6%(27건)가 정관 변경안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연금은 또한 주요 재벌 계열사의 주총에서도 주주 권익 보호를 내세우며 총수의 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행사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3월 현대건설 주총에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이사 선임안에 ‘기업가치 및 주주권익 침해 이력’을 들어 반대했다.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의 오리온 이사 선임안과,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한진해운홀딩스 이사 선임안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은 또 삼천리의 유상감자와 주식소각, 키움증권 재무제표 승인 주체 변경 등의 안건에 반대표를 던져 부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기업들은 아예 주총 전에 국민연금 쪽에 직간접으로 상정할 안건에 대한 반대 여부를 물어보기도 한다.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이런 행보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국민연금이 총수 전횡에 맞서 주주 가치를 지키기 위해 건전한 감시자로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까지 거둔 기금이 350조원에 이르고, 국내외 주식에 81조9000억원(전체 시가총액의 5.3%)을 투자했다. 지분을 5% 넘게 보유한 상장사만도 170곳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19대 국회에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의무화를 추진하는 법안이 추진될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대기업에 대한 주주권 및 사외이사 추천권 행사 의무화 등을 뼈대로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이미 발의했다. 지난해 4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주장한 뒤 1년여 만이다.
정재규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조정실장은 “상장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관건은 기관투자가에 있고 그중에서도 핵심은 국민연금”이라며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늦은 감이 있지만 필요하고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등의 오해와 비판도 나오고 있어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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