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EU FTA 따라 내년 7월부터… 정부, 고객 사전동의 면제까지 검토
내년 7월1일부터 국내에 진출한 유럽 금융회사는 한국 지점에서 수집한 고객의 개인정보를 고스란히 볼 수 있게 된다. 지난해 발효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금융서버를 유럽에 두는 ‘금융정보 해외위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신체 특징은 물론 어떤 질병을 앓은 적이 있는지 등 한국 사람의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가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민감정보의 범위를 오히려 축소하고, 금융소비자 사전동의도 면제하는 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FTA 체결 국가의 반발을 우려한 것으로, 사전동의 면제와 민감정보 범위 축소가 이뤄지면 한국민 개인정보 보호는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경향신문이 28일 입수한 ‘한·EU FTA에 따른 데이터 해외위탁 태스크포스(TF) 정보보호반 2차 회의개최 계획’을 보면 금융위원회 전자금융팀은 최근 금융감독원 개인정보 보호 TF 담당, KB국민은행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 동부화재 상무, 대우증권 상무, 김앤장 변호사, 고려대 교수 등과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지난해 7월1일 발효한 한·EU FTA는 한국 정부가 “협정의 발효 뒤 2년 이내에 금융회사의 일상적인 영업과정에서 자료 처리가 요구되는 경우 그러한 처리를 위해 자신의 영역 안과 밖으로 정보를 전자적 또는 그 밖의 형태로 이전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ING생명 등 한국에 진출한 유럽계 금융회사가 영업을 하면서 수집한 고객의 금융정보에 대한 분석·평가를 위해 유럽 본사로 정보를 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국내 외국은행 지점 등은 신용정보법 및 금융실명법 준수 등을 전제로 금융정보 해외위탁을 할 수 있지만,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이전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2년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7월부터는 유럽 금융회사 본사에서 고객 정보를 통째로 분석할 수 있다.
본사에서 정보분석 업무를 처리하게 될 유럽 금융회사는 최대한 많은 양의 고객정보를 제한 없이 이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가 유럽 금융회사의 요청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는 쪽으로 국내 금융감독 체계를 정비한다면 고객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민감한 정보가 유럽에 이전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정보보호반 회의자료를 보면 세세한 고객정보가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회의자료에는 민감정보의 개념을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이 규정한 민감정보(사상·신념, 성생활, 정당 가입·탈퇴 등)로 좁게 설정하려는 안이 포함돼 있다. 유럽계 보험회사가 수집하는 금융정보에는 개인정보보호법에서 민감정보로 규정하고 있지 않는 의료내역, 신체정보, 직업정보 등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도 있다.
민감정보의 개념에 대해 “민감정보를 확대할 경우 (유럽)금융회사의 부담이 될 소지가 있어 민감정보 범위는 최소화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안과 “개인정보호호법 이외의 민감정보(생체정보 등)도 포함해야 한다”는 안이 맞서고 있다. 또 근본적으로는 민감정보를 FTA에 따른 위탁 대상 데이터에서 제외할지 여부도 쟁점이 되고 있다.
해외위탁하는 금융정보의 보호방안도 쟁점이다. 해외위탁 정보는 한국 금융당국이 제대로 감독할 수 없고, 유출 시 피해가 크기 때문에 모든 금융거래 정보에 암호화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안과 암호화 자체가 필요 없다는 안 등이 있다. 금융정보를 이전할 때 개별 금융소비자로부터 사전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도 논의되고 있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금융위가 한국의 관점대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감독체계를 짠다고 해도 상대방인 유럽연합이 ‘기대한 수준과 다르다’고 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어려운 문제”라며 “FTA 체결에 따라 금융정보의 해외위탁이 원칙적으로 허용된 상황이기 때문에 외국으로 이전된 정보에 대한 사법권, 금융감독권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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