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이 살수록 싸다는 일반 상식과 달리 묶음상품이 오히려 낱개상품보다 비싼 경우가 빈번한 가운데 1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주부가 묶음상품들을 모아놓은 매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
‘묶음상품이 싸다?’
본격 휴가철에 접어든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대형마트 A사 점포 지하 1층 식품매장.
여행에 앞서 장을 보러 나온 주부 이상미(41) 씨는 쉽게 조리할 수 있는 ‘o’ 즉석밥 6개짜리 묶음상품을 집었다가 깜짝 놀라면서 다시 내려놨다.
‘3+2개’ ‘6개’ ‘8개’ 등 묶음상품이 매대에 뒤죽박죽 섞여 있는데, 오히려 100g당 단위가격을 확인한 결과 6개짜리(571원)보다 5개짜리(386원)가 훨씬 저렴했다.
이 씨는 “수많은 제품이 빼곡히 쌓여 있는 매대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단위가격을 비교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며 “혹시나 해서 단위가격을 안봤다면 여행도 가기 전에 바가지를 쓸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같은 매장에 들렀던 이정화(여·34) 씨도 차 안에서 먹일 아이용 간식을 만들기 위해 초밥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재료식품 ‘ㅈ’을 집었다가 내려놨다. 480g짜리의 100g당 가격이 1188원으로 230g짜리(1035원)보다 더 비쌌던 것.
개인사업가 이권학(44) 씨도 같은 경험을 했다. 휴가철이나 집안행사 때 쓰기 위해 대형마트 B사 점포에서 부탄가스 한 상자(28개)를 샀다. 하지만 부탄가스의 낱개 가격이 4개짜리 상품보다 45원 더 비싼 1045원인 것을 알고 “사기당한 기분이었다”고 씁쓸해했다.
많이 살수록 싸다는 상식의 허를 찌르고 오히려 더 비싼 묶음상품 상술이 기승을 부려 소비자들의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2일 문화일보가 정부의 생필품 가격정보 사이트 ‘티프라이스’(7월27일 현재 기준·주단위로 가격정보 갱신)를 통해 서울 시내 주요 대형마트·백화점 점포 다수의 제품 판매가를 분석한 결과,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감지됐다.
대표적인 유형이 구입 물량이 많은데도 단위가격은 오히려 비싼 경우. 백화점 A사의 ‘ㄷ’ AA 건전지의 개당 가격은 4개짜리가 1000원인데 반해 2개짜리는 850원에 불과했다. 경쟁 백화점 B사의 4개짜리 묶음상품 가격은 개당 1088원이었다.
아이스크림 가격은 더 심했다. 대형마트 B사의 경우 ‘ㅂ’ 아이스크림의 10㎖당 가격은 5개 포장 제품의 경우 100원인데 반해 낱개 가격은 67원에 불과했다. ‘ㅇ’아이스크림 가격도 마찬가지. 5개 묶음상품 가격은 10㎖당 94원인데 반해 낱개 가격은 75원이었다. 부산YMCA는 최근 부산지역 대형마트 빙과류 판매가를 조사한 결과, 소비자의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오히려 묶음포장이 비싼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분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묶음상품 중 인기가 많은 수량만 가장 비싸게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백화점 B사 식품 매장에 판매되는 고급 즉석밥 ‘ㅅ’의 경우 낱개와 6개짜리의 100g당 가격은 643원인데 비해 3개짜리는 1071원으로 가장 비쌌다. 매장 직원에 따르면 1인 가구가 늘면서 3개짜리 묶음상품을 찾는 고객은 크게 늘고 있는 추세였다.
묶음상품과 낱개상품 중 하나만 매대에 진열해 가격비교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는 다반사다. 대형마트 A사와 B사에서 판매하는 소화제 드링크 ‘ㅅ’(낱개 판매)의 10㎖당 가격은 각각 40원과 53원. 대형마트 가운데 유일하게 10병짜리 1박스 제품을 판매하는 C사의 10㎖당 판매가는 60원으로 단위가격이 가장 비쌌다.
용량이나 중량이 더 큰 제품이 적은 것에 비해 같거나 비싼 경우도 있다. 대형마트 A사의 경우 물만두 ‘ㅅ’ 제품이 한 매장에서 ‘650g+200g’짜리와 ‘400gx2봉지’ 짜리가 각각 판매되고 있었다. 약간의 중량 차이가 있으나 단위가격은 같았다. 대형마트 B사의 경우 음식을 포장하는 ‘ㅋ’랩의 ‘가로 1㎝, 세로 1m’당 가격은 ‘22㎝x50m’나 ‘30㎝x50m’ 제품 모두 2.9원으로 같았다. 음식포장에 쓰는 ‘ㄹ’호일은 ‘30㎝x50m’짜리의 ‘1㎝x1m’당 가격은 5.6원으로 ‘25㎝x50m’ 보다 0.7원 더 비쌌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이 같은 가격역전 현상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비록 단위가격 표시가 돼 있어도 깨알 만한 글씨로 적혀 있어 얼굴을 바짝 갖다 대야만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낱개 상품과 묶음상품 중 하나만 팔아 즉석에서 가격비교를 어렵게 하거나 묶음상품의 경우 눈에 잘 띄는 특판매대에 배치하고, 소량상품은 구석에 배치해 가격비교를 현실적으로 어렵게 만들어 놓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아예 단위가격 표시를 빼놓는 경우도 있다.
이를 둘러싼 유통·제조업계와 소비자 간의 시각 차이는 크다. 유통·제조업계는 “상의해 특판 상품을 내놓다 보면 어떤 경우는 대량상품이 소량보다 비싼 경우가 간혹 생긴다”고 주장했다.
반면 소비자단체 등은 “단위가격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다. 눈속임을 통한 얄팍한 상술도 적잖다”는 입장이다. 부산YMCA 관계자는 “생필품을 낱개로 사려고 하면 선택의 폭이 크게 제한된다”며 “대부분이 낱개 제품을 매대에 거의 배치하지 않거나 가격대가 높은 상품만을 갖다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전혀 할인 효과가 없는데도 마치 할인되는 것처럼 기만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단위가격 등이 100g당, 10g당으로 다르게 적혀 있거나 제품 용량이나 중량 등이 지나치게 세분화된 데다, 중구난방이어서 소비자로 하여금 합리적인 비교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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