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3일 목요일

“50만원짜리 에어컨 이전비 40만원” 배보다 배꼽





22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 한 에어컨 업자가 에어컨 이전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이사가려면 차라리 에어컨을 버리고 가는 것이 낫겠더라고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데 어디 맘 편히 에어컨을 이전 설치하겠습니까?”

인천 서구에 사는 대학원생 마모(29) 씨는 최근 에어컨을 새로 교체하면서 불필요해진 중고 에어컨을 이웃에 선심 쓰는 셈 공짜로 줬다가 도리어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이웃이 에어컨을 이전 설치하면서 개인 설비업체로부터 청구받은 금액이 무려 40만 원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마 씨가 해당 에어컨을 새 제품으로 구입할 당시 금액은 50만 원. 설비업자는 이전 설치 비용으로 에어컨 가격의 80%나 받아간 것이다. 의아해진 마 씨가 이웃집에 들러 꼼꼼히 살펴보니 도대체 어디서 비용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었다.

마 씨는 “파이프가 지나갈 구멍만 하나 벽에 뚫었을 뿐 새로 부품을 교체하거나 연장한 것도 아니었다”며 “일반인들이 에어컨 설치에 관해 무지한 점을 악용해 업체에서 과다하게 비용을 책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최모(여·36) 씨도 억울하긴 마찬가지. 최 씨는 최근 이사를 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스탠드형 에어컨(18평형)을 제조사 계열사를 통해 이전 설치했다가 속만 상했다.

최 씨는 “기본설치비 10만9000원에 가스충전비 5만1000원, 앵글비 10만 원, 그 외 기타비용 등 총 39만5000원을 이전 설치비로 냈다”며 “잘 몰라서 업자가 하자는 대로 했지만 아는 사람의 경우 업자와 실랑이 끝에 이전 설치비를 4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깎았다고 해 왠지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들쑥날쑥 ‘부르는 게 값’인 에어컨 설치 비용 때문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 새 제품을 사는 경우엔 대개 에어컨 설치가격이 판매가격에 포함돼 있어 파이프 등을 연장하지 않는 한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을 이전 설치하는 경우 업체마다 제각각 다른 기준으로 요금을 청구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곧 이사철이 본격화되면 소비자들의 피해사례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2일 문화일보가 서울시내 에어컨 설치업체를 조사한 결과 실제로 업체마다 요구하는 이전 설치비용이 달랐다. A 제조사의 계열사는 스탠드형 에어컨(18평형) 기준으로 기본 설치비만 11만 원을 받고 있다. 냉매 가스주입이나 앵글제작, 파이프 연장, 실외기 옥외작업 등을 해야할 경우 40만∼50만 원까지 요금이 증가했다. B 유통사의 협력업체는 기본 설치비 10만 원 외에 위험수당, 노후부품 교체 등이 포함된다면 40만 원까지 비용이 늘어났다.

서울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J 전문설비업체는 기본 설치비 10만9000원을 포함해 부수비용까지 고려한다면 평균적으로 30만 원이 소요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종로구 장사동에 위치한 M사, 경기 고양시 일산의 H사처럼 기본요금 3만 원에 비용이 추가돼도 15만 원은 넘지 않는다는 비교적 저렴한 곳도 있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부 에어컨 업자들은 소비자들이 에어컨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점, 이전 설치를 스스로 할 수 없는 점 등을 악용해 근거 없이 과다요금을 책정하거나 불필요한 부품 등을 사용해 비싼 비용을 전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에어컨 설비업체를 운영하는 오모(47) 씨는 “대기업 및 이삿짐업체 등과 협력하는 설치업자들은 20∼30%가량 수수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이익을 남기려 해 방문하는 기사들마다 비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솔직히 40만 원 이상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업체마다 요구하는 에어컨 이전 설치비용이 큰 차이를 보이면서 소비자들의 불만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21일까지 접수된 에어컨 관련 소비자 상담건수는 총 332건으로 지난 2010년의 273건, 2011년 387건과 비교해서도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피해구제 건수도 올해 같은 기간까지 42건으로 2010년 38건을 이미 넘어섰고, 가을 이사철 후엔 2011년의 51건마저 능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부 에어컨 설치 업자들의 횡포를 일일이 규제하긴 어렵다. 설치 하자로 인해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제외하곤 이전 설치 시 비용 기준 등 여타 에어컨 설치에 관해 법적으로 명시된 부분이 없어 업체 측의 ‘과다 비용 청구’ 등에 대해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각 업체가 제공하는 부품과 서비스의 질에서도 차이가 나고 부품 교체 주기 등에서도 업자마다 견해차이가 있는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민간 거래 기준을 일일이 법으로 명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결국 개인이 스스로 각 업체가 제공하는 가격이나 서비스의 질 등을 비교해 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윤 한국소비자원 팀장은 “에어컨 이전 설치비용 문제는 대개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개인업체에 의뢰할 경우 많이 발생한다”며 “나중에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피해보상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라도 되도록 대기업 등 믿을 만한 업체와 거래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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